2-2 이원론 예정조화설

하나의 재미있는 가설 중에 하나는 예정조화설입니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에 신 혹은 다른 기작에 의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우리가 행동하는 바와 일치하도록 조정되어있다."

즉, 신 혹은 어떤 존재가 모년 모월 모일에 내가 손을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에 맞추어서,
손이 들리는 물리적 작용이 일어나도록 설계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흥미로운데, 우리의 정신 작용이 우리의 물리적인 신체 작용의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둘은 그냥 어떤 존재에 의해서 묶여있는 거죠. 그래서 아주 재수가 좋게 내가 신발끈을 묶어야 겠다는 생각을 할 때
신발끈을 묶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주장은 말도 안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기존의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 '정신적 작용이 어떻게 물리적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가?' 에 대해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주장의 약점은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 혹은 기작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곱셈/나눗셈 계산기, 이진법과 미분의 창시자로써 이공학도에게 유명한 라이프니츠(!)가 이 주장을 했습니다.
가끔 유럽 철학사를 보면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고를 하던 사람들마저도 신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심지어 데카르트도 그랬습니다.)
21세기 공학도의 눈으로 볼 때는 '아니, 왜 저렇게 깨인 사람들이 신에 대한 주장을 하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봅시다. 저 시대는 17세기입니다. 저 때의 패러다임 안에서 저런 주장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여러분도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와 계급의식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 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2-1 이원론자 데카르트의 주장 의식에 대하여

르네 데카르트.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직교 좌표계를 고안한 사람이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이란 말로도 매우 유명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는 프랑스어로 말했습니다만. 라틴어 경구가 더 유명합니다.)

데카르트는 아주 의심이 많았던 사람이고,
오류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했던 사람입니다.
으레 이런 류의 철학자들이 그렇듯이 수학적 방법론을 이용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 시켜나갔습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경구를 남겼지요.

데카르트의 입장에서 이원론 문제는 흥미로운 문제였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그는 일종의 정신적 작용이 존재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어떻게 현실적인 물체인 신체를 정신이 움직이는가?'를 따지는 것이 크게 의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는 유명한 '송과선' 주장을 합니다.
즉, 우리 뇌의 송과선이 정신과 신체를 연결시켜준다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송과선은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뇌의 기관입니다만, 이름이나 위치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 주장에서 송과선은 우리의 혼/정신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조종되는 부분입니다.
송과선에서는 이 혼/정신의 작용을 육체적인 작용을 할수 있도록 몸을 제어하는 신호로 바꿉니다.
이 일련의 신호를 통해서 몸은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이런 신호를 정기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아주 이상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영혼의 존재를 믿는 분이라면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설명 외에는 다른 뾰족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될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송과선 주장은 우리에게 이를 시사합니다.
'만약 이원론이 맞고 정신이 육체에 의해 제어된다면 이를 매개하는 매체가 있어야 하고 이 매체는 
물질세계와 비물질세계 경계에 있을 것이다.' 


2. 이원론과 일원론의 충돌 의식에 대하여

인간이 의식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것이 비단 현대의 일만은 아닙니다.
아주 고대부터 인간은 의식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 오랜 새월동안 인간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질적이지 않은 무엇인가가 우리의 의식을 결정한다.'

이런 주장은 어떻게 보면 아주 그럴싸합니다.
1. 살아있는 생물에게는 의식이 있다.
2. 죽은 생물에게는 의식이 없다.
3. 살아있는 생물과 죽은 생물 사이의 물질적 차이는 거의 무시할 정도다(적어도 그 당시의 관찰력으로 볼때에는)
4. 따라서 어떤 살아있는 생물에게만 존재하는 비물질적인 무언가가 의식을 결정한다.

이 주장은 너무 그럴싸해서 21세기인 지금에 있어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혼','기' 그리고 '영'의 존재를 믿는다면 여러분도 이 주장의 신봉자입니다.
이렇게 신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주장을 이원론이라고 합니다.

어떤 주장이 있으면 으레 그것에 대한 반론이 있기 마련입니다.
신체와 정신이 합치되어있어서 분리되어있지 않다는 주장을 일원론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들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이 더 합당함을 보이기 위하여,
약점/문제점에 대해서 설명해야 합니다.

이원론자가 보여야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어떻게 비물질적인 존재인 정신이 육체의 움직임에 간섭할 수 있는가?

일원론자가 보여야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어떤식으로 물질들이 정신적인 활동에 기여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 친구가 집에가서 내가 배웅해주려고 손을 흔들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이원론자는 '어떻게 친구를 배웅해야겠다는 생각이 손을 부자연스러운 위치로 움직였는가?'에 대해 답해야 하고
일원론자는 '뇌의 어떤 물리적인 구조가 친구를 배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는가?'에 대해서 답해야 합니다.


1. 의식에 대하여 - 시작 의식에 대하여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 요한복음 1장 1절

앞으로 제가 쓰게 될(사실 쓸지 안쓸지도 모르는) 일련의 글들은 의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조금 거창하게 시작하고자 합니다.

언제부터 의식은 만들어졌을까요? 우주가 탄생했을 때부터?
제가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그 당시 우주는 시간과 공간, 원소의 개념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가장 기초적인 물리 개념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어떤 지적인 존재가 있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아마 의식은 이때에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생명이 탄생했을 때부터?
물론 한 인간이 감히 거만하게 다른 생물의 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겠지만,
저는 제 구강상피세포나 아메바에게 의식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그 최초의 생명은 이들 미생물보다 덜 발달되었을 것이며,
그 때에도 의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의식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이 긴 우주의 역사로 보았을 때 아주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저 상상하기도 머나먼 과거의 무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이 의식에 대해서 아는 것은 미미합니다.
인간은 저 빅뱅시대까지의 우주의 역사에 대해서 탐구했지만
아직도 의식이 뭔지에 대해서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각 시대의 석학들은 과연 의식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주 열심히 탐구했고, 저도 가끔 이 문제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습니다.
의식은 무엇인가? 의식은 무엇인가? 의식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앞으로 제가 쓸 일련의 글들에서 
저는 "의식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주기보다는
이 문제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또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다루고자합니다.



1